흑사막의 주인공 엘 마르수스.
황금빛 모래언덕을 떠나 험한 사막 벌판을 달린 후 도착한 곳은 엘 마르수스라는 산이 있는 곳이었다.
바하리야 국립공원의 흑사막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명성 그대로 먹물을 어지럽게 흩뿌려 놓은 듯했고, 엘 마르수스는 "검은 물감으로 그리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어느 지역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먼 옛날 화산활동 지대였던 이 곳은 화산석으로 뒤덮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검은 빛 사막을 만들어 냈다. 엘 마르수스는 넓은 분화구를 통해 거칠게 용암을 분출하고 그대로 굳은 듯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실제로 봤을 때엔 생각보다 아담한 산이었지만, 그 독특한 모습에 우리는 탄성을 자아냈다. 파아란 하늘, 먹빛 바위산, 그리고 황량한 벌판은 서로 절묘하게 어우려져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관이었다.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은 바하리야의 서비스.
역시나 내가 풍경에 몰두하는 사이 세 사람은 인물에 몰두해 있었다.
헬미는 지프에서 내리자마자 절대로 산 가까이 가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바위산의 아름다운 모습에는 위험천만한 낙석이 함께 있었던 탓이다.
먹물로 칠한 듯한 화산석
의외로 규모는 작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바닥에 납죽 엎드...리는 짓은 차마 못하겠고, E 410의 라이브뷰 기능을 이용해서 수박만한 화산석들을 주인공 삼아 사진을 찍었다. 아쉽게도 끄트머리가 잘려나갔다. 초보 실력이 어디 가나...
모래 언덕에서 느낀 거지만, 우리 일정은 생각보다 여유로운 일정이 아니었다. 사진만 찍어대기는 싫었기에, 풍경을 감상하면서 가상의 프레임을 잡고, 사진을 찍고... 그러다 보니 각 뷰포인트에서 주어지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짧게 느껴지기만 했다. 풍경만 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여행 동료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을 시간이 있을 리 없다.
산을 찍기 위해 100 여미터 뛰어나갔다가 돌아오는 데 Y가 나를 향해 렌즈를 돌렸다.
황량한 벌판 달리기
첫번째 기념촬영
고맙게도 일행들은 내가 풍경을 담고 싶어하는 마음을 잘 이해해줘서 어느 정도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항상 자기들 먼저 인물을 찍기에 좋은 앵글을 먼저 찍어보고 마지막 떠나기 전 나를 불러 기념 사진을 담아주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은 모델로서 아주 훌륭한 피사체였기에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기도 했으니...
연출,모델,촬영까지 모두 스스로..
출발 준비 완료..
사진 찍고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세 사람은 특별한 사인이 없어도 척척 호흡이 잘 맞았다.
어쩌면, 이들... 아니 우리들에게는 사진여행이라는 테마가 딱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대의 카메라와 네 명의 모델... 정신없이 찍고 카이로 숙소로 돌아와 바하리야에서 찍은 사진을 모두 취합해보았을 때, 무려 1000장에 가까운 수치에 우리모두 경악했었다. (이 중 자체 검열 과정에서 200여장은 삭제 된듯..) 사진을 찍다 보니 헬미의 "Hurry up!!"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사막에서 등산하게 될거라곤 생각치도 못했다.
등산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얼마 높지 않은 바위산이긴 했지만, 광야에서 벗어나 도로를 달려 고깔 모양의 야트막한 산에 도착했을 때 다른 외국인 관광객 몇명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막 내려오고 있던 참이었다.
헬미는 이 곳을 파노라마 뷰포인트라고 소개하며 올라가서 사진찍고 오랜다.
산세를 보니 많이도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쪽으로는 노란 색이 너무 진해 붉게 느껴지는 바위가 드러나 있었고, 검은색 화산석은 많이 깎여져 나가고, 멀리서 날아온 모래로 서서히 뒤덮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드러난 속살..?
시간도 얼마 안준다고 하니 부지런히 올라가야했다. 밑에서는 낮아 보였지만 2/3 정도에서 흑사막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서 있는 산과 비슷한 크기의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엘 마르수스 보다 강렬한 모양의 봉우리는 아니었지만 저 산도 분출구였겠구나 라는 상상을 바로 불러일으킬 정도로 여기저기 봉긋봉긋 솟아 있는 모습이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아.... 망원렌즈가 아쉽다...
![091118_moun_002[1].jpg 091118_moun_002[1].jpg](http://webhard.bluemarble.travel:8000/ImageBank/egypt09B/091118_moun_002[1].jpg)
도로 오른쪽의 풍경들
우리가 오래 버티고 서 있었던 능선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포인트인 모양이었다. 돌맹이를 쌓아 많든 석탑도 있었고, 꽤 바위에 꽤 힘주어 판듯한 이름 하나.
... 어이쿠야 한글이었다...
'아, 부끄럽다.' 라고 네 사람이 동시에 나직하게 말했으나 그너머로 펼쳐진 낙서장...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 덜 부끄럽네."
J가 중얼 거렸다. 어딜가나 몰지각한 인간들은 많은 모양이다.
우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사진으로 담아야 한다!!!
낙서...
T^T 제가 안그랬어요.
날고 싶어~!
야호!~
사진기 들이대기
올라온 김에 끝까지 올라가보자고 했다. 두 사람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Y는 부지런히 올라간다. 나는 세 사람이 올라가는 모습을 찍어줄려고 하다 보니 가장 늦게 올라가게 되었다. (아.. 핑계좋다.) 그런데 저 밑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치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 이 곳엔 우리밖에 없는데...
환청인가... 우리를 향해 소리를 친건가... 시계를 보니 헬미가 내준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소리치자 멍하니 서 있는 Y.
우리 이제 내려가야 할 거 같은데요? 헉?!
ㅠ_ㅠ 님아 정말 죄송...
올라가고 싶으면 다 같이 올라가보고 내려가자고 했더니 괜찮다며 내려온다.
S와 함께 항상 천천히 걷던 그녀가 이렇게 등산에 열혈모드일거라 생각도 못했다. 내려와서 좀더 시간을 주고 내려가자고 할 걸 미안하다고 하니 자기도 등산이나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아니었는데 왠지 홀린 것 처럼 막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나....
"아우... 괜히 열심히 올라갔어 다리 아프네."
Y가 투덜거리자 다들 웃고 말았다.
지프를 타고 10분 정도 달렸을까.
헬미가 뭐 필요한거 있냐고 묻는다. 무슨 뜻인가 하고 있는데 저 멀리 아주 작은 마을이 보인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거나, 맥주나 과자를 사고 싶으면 가게에 들렀다 가겠다고 한다. 우리는 대환영. 마침 화장실 함 들렀다 갈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한국을 떠나 올 때부터 우리는 블루마블트래블에서도 동참하는 공정여행 캠페인에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우리.. 맥주라도 좀 사가는 게 어때요? 조금 비싸더라도 말이죠."
놀랍게도, 네 명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서로 얼굴을 보고 웃으며 즐거운 기분이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1층짜리 베드윈식 건물은 낡고 허름했지만, 입구와 울타리를 타고 자라난 덩굴식물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울타리 아래 나무는 아마도 장작용인듯
모두가 화장실에 들렀다. 베드윈 가게는 입구쪽에서는 작아보였지만, 안으로 길게 뻗은 상당히 넓은 건물이었다. 괴기영화에 나올법듯한 낡은 화장실은 꼭 우리나라의 옛 좌변기식 화장실과 흡사한 분위기였다. 한켠에 물통이 있었다. 볼일 본 후 물로 밀어내보내는 식이랄까...
나와보니 다들 돈줄을 붙잡고 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맥주값을 알아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세 개 정도만 사자고 했더니 J가 버럭하며 말한다.
"무슨 말이에요! 다들 두개씩은 마셔야지!! 그리고, 남자들 것도 사고..."
누가 A형 아니랠까봐 Y와 S는 J의 압박에 주눅이 들어 우물쭈물 하더니 한 개 정도밖에 못마시겠다고 발을 뺐다.
"무슬림은 술 안마셔요. 맥주마시면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될 거고, 피곤한 상태에선 금방 취하기도하니 기분 낼정도로만 사가는 걸로 해요."
J를 달래서 결국 한 캔씩만 마시는 걸로 하고 여유분으로 하나 더 해서 총 5캔을 사기로 했다. 분위기를 모르는 배신자들 운운하며 토라져있던 J는 캔 크기를 보고 폭소하더니 더 이상 투덜거리지 않았다.
500cc 짜리....참..컸다.... (한숨)
5개에 115 기니. 이집트 브랜드의 맥주는 싸다고 들었는데 예상보다 꽤 비쌌다. 하긴, 이 나라는 허가받은 상점에서만 주류를 판다. 맥주를 불법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커미션이 붙어서 그런거라면 그냥 나눠먹으렴 하는 마음으로 다들 그러려니 했다.
맥주를 들고 지프에 오르는데 어린 아이를 안고 있던 베드윈 여자가 우리쪽 베드윈들에게 느낌을 알 수 없는 묘한 톤의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아랍어로 큰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보자면 아직도 헷갈린다. 저들이 싸우고 있는 건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인지. 표정을 보니 살짝 언짢은 것 같기도 하지만 화난 것 같지도 않다. 지금까지 큰 목소리를 내는 주민을 만나지 못한 우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헬미에게 물어보니 맥주를 너무 싸게 사서 그런다고 그랬다.
"아니 이럼 우리의 의도가 빗나가는건데..."
헬미에게 돈을 더 내도 상관없다고 그러니 말을 조금 바꿔 우리 때문은 아니라며 그냥 있으라고 그랬다. 여자는 큰소리치는데, 두 남자는 다소 멋적어 하는 분위기. 우리가 의아해하는 동안 차에서 4m 정도 떨어져 있던 여자는 6살 정도의 남자아이를 시켜 맥주와 담배를 아흐메드와 헬미에게 가져다 주었다. 헬미는 꼬마에게 담배값을 쥐어 주었고, 아흐메드는 꼬마와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됐다. 그냥 가져가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아흐메드.
다시 여자가 큰소리로 뭐라고 말한다. 결국 아흐메드는 파란색 사카라 캔맥주를 받아들고 옆자리의 칼릿에게 건냈다.
"너네들 뭔 짓 한거니... 거기서 맥주 삥뜯은거니?"
그렇게 작은 소동을 끝맺고 우리는 백사막을 향해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