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바위티 마을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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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 사방에 달린 스피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불량과 멀미를 일으키는 민감한 체질이다. 나름의 노하우로 극복하고 있지만(귀차니즘과 무시즘이 최고), 컨디션을 생각해서 걱정따위는 하지 말자고 매 순간마다 결심을 해도 걱정도 팔자라던가, 소용이 없다.
잠이 많은 내가 이 여행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알람 소리에 잘 깰 수 있으려나...
잠자리에 누워 완전히 잠들기까지 30분 이상 걸리고, 숙면이란 것은 한 달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해보지를 못하며, 그 때문에 아침에 멍한 정신으로 지내는 한심한 존재였지만, 놀랍도다, 인간은 능히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 카이로에서 잘 자려고 끊임없이 돌아다닌 덕분에 5~10분 만에 잠이 들고, 5시에 일제히 울리기 시작한 아잔소리에 한번 잠을 깼지만, 괴롭기는 커녕 자장가처럼 낭랑하기만 하다. 사실 아주 가까이 모스크가 없어서 다행이었던거지. 다른 세 사람은 그 때문에 잠깬 후 뒤척였다고 한다. (나만 잘 잔거야...ㅋㅋㅋ)

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
다들 피곤해하면서도 오늘 하루는 절대 씻을 수 없는 극악한 환경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부지런히 일어나 샤워하고 머리감고, 출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밤에 입을 옷, 물티슈, 마스크로 쓸 머플러, 컵라면, 커피, 비상약, 각 방에 한 접시씩 준비해주신 만다린 오렌지(다들 이 오렌지 서비스에 감동)도 봉투에 쓸어 담고, 서울에서 공수해 온 과자 보따리도 통째로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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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어하던 구아바.

만 이틀 동안 제대로 된 식사 한번 못했던 우리는 청솔에서 아침으로 준비해주신 시레기 사골 된장국에 감동하며 마음도, 몸도 한껏 따뜻해지며 원기충전할 수 있었다.
후식으로 내주신 석류쥬스 역시 맛있게 마셨지만, 전날 내어주셨던 구아바 쥬스가 더 맛있었다. 강렬하지 않은 맛이 오히려 피곤한 몸에 더욱 잘 맞았던 탓일까... 제철의 구아바를 통째로 갈은 후 살짝 얼려 내어주신 그 쥬스는 세 사람이 서울로 돌아와서도 또 한번 마시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구아바.. 망고를 사랑했느냐... 나도 사랑해주렴.. - _-;;;

바하리야를 향해 출발!!
헬미가 오자마자 1.5L짜리 생수를 몇 병 챙겨 바위티마을까지 타고 갈 은색 중형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나름 필수적인 것만 챙겨간다는 우리의 짐이 17인치 정도의 트렁크 두개에 개인용 소지품을 줄줄이 달고간 반면, 헬미는 아주 간소했다. 허리백 하나.....
나 자신도 모르겠다. 왜 여자들의 짐이 이렇게 커지는지.. -_-a.. 긁적..
카이로를 거의 벗어났다고 생각될 즈음 헬미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주거지역을 가리키며 6th October City 라고 소개했다. 대충 듣고 있자니 우리나라의 분당처럼 계획 신도시쯤 되나 보다. 근처에 건립한 지 얼마 안된 기술대학도 있었다. 어느 분야의 테크놀로지냐고 되묻자 헬미가 자기도 모른다고 그런다.
이집트에는 6th October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 다리, 거리, 도로가 꽤 많다. 10월 6일은 과거 이스라엘과 치렀던 전쟁이 끝난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집트 국민들이 6th October라는 말을 사랑한다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얘기도 잊지 않는다.
"TV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적이며 서로 사이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집트 국민들은 아직도 전쟁을 잊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싫어해요."
누군가가 그랬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고, 전장에 나가 피를 흘리는 사람은 젊은이들이라고....
전쟁...
영원히 사라져야 할 나쁜 것임에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최악의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저런 망상에 사로 잡혀 있다보니 어느새 황량한 벌판에 고속도로가 끝없이 이어진 풍경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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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이집트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일 것이다.

간식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이 아가씨들은 출발한 지 한시간도 되지 않아 한 봉지씩 뜯기 시작했다. 인솔책임자인 헬미에게도 과자를 권했지만 그는 다이어트중이라는 핑계로 정중하게 거절한다. 갑작스럽게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과자 맛 자체가 이집트 사람들한테 안맞을 수도 있을거에요."
다들 수긍하면서 더이상 그에게 과자를 권하지 않기로 했다. 양파링 한 봉지를 해치우더니 이내 오징어집 봉지 하나를 푹 뜯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중얼거리고 말았다.
"이 냄새는... 외국인들에게는 화생방수준일텐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헬미가 움찔하더니 운전석쪽 창문을 완전히 내려버렸다. 세 사람은 차마 소리내 웃지못하고 킥킥거리다가 과자를 입 속에 털어 넣고 봉지를 치워버렸다. 우리가 미안하다고 하니 그는 애써 괜찮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챙겨온 만다린 오렌지 하나를 까서 권했더니 넙죽 받아먹는다. 쓸모가 있을까 싶어서 들고 나온 비행용 멀미 봉투가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오렌지 껍질을 거기다 넣고 기어박스 옆으로 뒀더니 헬미가 봉투에 손을 넣어 껍질 조각을 꺼내 냄새를 맡았다. ...어지간히 냄새가 지독하게 느껴졌었나보다..
모두 창문을 조금씩 열어 환기를 시키기로 했다. 헬미가 자기 자신도 좀 머쓱했는지 허허허 웃는다. 그리고는 오렌지가 감기에 좋다며 코감기 걸리면 오렌지껍질을 비벼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헬미의 컨디션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띠링.. 띠링...
뒷좌석의 세 사람이 슬슬 졸려워 할때 즈음 차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과속하고 있다는 얘기.
헬미가 은근슬쩍 내 눈치를 살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머쓱해 하더니 부탁인지 협상인지 정체모를 제안을 해온다. 미안해요. 헬미. 여기서 다 뽀록 나겄네...
"마담 존께서 제한 속도 넘기지 말라고 했지만, 딱.. 10km만 더 빠르게 갈게요."
나는 단서를 걸었다.
"그래요. 앞에 차가 없을 때만..."
(T^T 흑흑. 뭐라고 할 수 없었어요. 저도 간간히 120이상 밟는걸요.)
어느새 뒷자석에서 오가던 대화가 없어졌고, 감기약을 먹고 왔다는 헬미도 조금씩 지치는 것 같았다. 졸릴 거 같은 분위기에 마땅한 건 음악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콘솔박스를 열어보니 음악cd몇장이 들어있었다. 플레이어에 아무거나 골라 넣으니 가녀리면서도 감성이 풍푸한 목소리를 가진 여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애잔한 느낌이 꽤 좋았다. 좋은 노래라고 추켜세워주자 헬미는 으쓱해 하면서 이집트 최고 인기 여가수라면서 이름을 가르쳐주었지만... 기억이 안난다. 적어둘 걸 -_-;;
헬미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ㅎㅎㅎ 안틀어줬으면 큰일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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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이 2시간 이상 계속되면 당연히 졸리겠지...

바위티행 도로의 작고 허름한 건물 하나.
멀리 건물이 보였다. 저게 뭔데 생뚱맞게 서 있나 했을 때, 헬미가 까페테리아에서 10분 정도만 쉬어가겠단다.
그렇구나...
휴게소였구나....
실망보다는 어쩐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일행들도 반가운 기색을 보이며 자동차에서 튀어나왔다. 강한 사막바람에 깜짝 놀라 소녀들처럼 꺅꺅 거리며 돌아다니니까 헬미가 놀래며 큰소리로 주의를 줬다. 위험하니까 도로 가까이 가지 말라는 거였다. 헬미가 단체사진을 찍어주고는 홍차하나를 들고, 담배를 피우며 자기만의 휴식을 취했다.
처음에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쉐이홍차를 주문해 마실 생각이었지만, 그만 건물에 마음이 홀려 사진찍는데 모든 시간을 다 써버렸다. 우스꽝스럽기도 한 건물이었지만, 이구동성으로 이 도로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했다. 오른쪽 귀퉁이에 씌여진 아랍어 문자가 빛바랜 벽에 개성을 불어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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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바위티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나갔다.
거친 황야가 계속되다가도 황금색 모래 언덕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기차가 불쑥 나타나 다가오더니 도로와 평행하게 이어진 철도를 따라 길고 긴 꼬리를 느릿느릿 이끌며 유유히 지나갔다. 철강회사의 화물 전용 열차라고 가르쳐준다.

울창한 야자 숲이 펼쳐지며 작은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도로는 그 작은 마을을 관통하고 있었고, 마을 입구에는 군경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해놓고 있어 우리는 그 앞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4~5명의 사내들이 모여있다가 우리가 다가오자 다들 우리에게 시선을 돌린다. 2명은 검은색 군복과 베레모를 쓰고 있어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이 확실해 보였다. 상급자인듯, 두터운 스웨터(의심 품지 마시길.. 진짜로 스웨터다....)를 입고 견장을 달고 있는 남자가 헬미쪽으로 다가왔다. 글로는 경직되어 보일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부러 티를 내어 반겨주지도 않았지만, 지나가는 여행객이 충분히 안심을 할 정도의 밝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차량이 그렇게 검문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차에 탑승한 채 간단하게 국적과 인원수만 확인하는 검문이 이루어 진 후 남자는 묵직하고 짧은 웃음을 보이며 좋은 여행되라는 인사를 건냈다. 우리는 다시 바위티를 향했다.
늦은 아침의 햇볕이 내리쬐는 작은 마을은 사막에 산재한 크고 작은 오아시스를 기점으로 자리잡은 마을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드윈이 아닌 철강회사 직원들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눈씻고 봐도 철강회사인 것 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진짜 사람이 살긴 하는 걸까하고 의심이 될 정도로 정적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행여 우리가 지루할 새라 간간히 이것 저것 설명해주는 헬미에게 의심의 반문을 할 수는 없었다.
마을을 통과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구의 바리케이트를 통과하고 몇백미터 달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마을을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의 길이보다 더 길어보이는 긴 가로수 길이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사막의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나무들이지만 왕복 2차선 도로 양옆에 줄지어 서 있는 정경은 조용한 시골 풍경 그 자체였다. 그 길을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까지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헬미가 마을 앞 뒤로 펼쳐진 넓은 야자나무 수림을 가리켜 Forest Wall이라고 했다. 이집트 정부가 카이로를 모래폭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한 야자림이었다. 그리고 그 열매의 대부분은 카이로에서 소비된다고 한다.

정오를 넘어서 출출해질 때 즈음 서부 사막에서 가장 큰 오아시스 마을 바위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로에서 바위티까지 네시간 남짓...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의 거리의 두 배 정도의 거리... 시와는 바위티까지 온만큼 더 가야한단다.
우와~~~멀긴 멀구나...

어쨌든 우리는 바위티에 도착했다.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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