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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더라 기회의 여신은 앞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불쑥 나타났다가 반들반들한 뒤통수를 보이며 홀연히 사라진다고... 이집트 여행이라는 기회는 그런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막 지나가려는 여신의 머리카락을 황급히 붙잡아 버렸다.
사실 이 여행은 갑자기 결정되었을 뿐, 처음 부터 갑작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무더운 여름때부터 시누이는 휴가계획을 얘기하면서 종종 여행가자는 얘기를 가족들 앞에 풀어 놓았었다. 아무리 잘 계획해도 변수가 많은 행사가 여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그저 기계처럼 맞장구만 쳤을 뿐 선뜻 실행할 용기는 나지 않아 대답을 회피하기만 했었다. 이유는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보살펴야할 열 마리의 고양이와 경제사정... 그리고 행여 무난하게 유지해온 시댁 식구와의 사이가 여행지에서의 사소한 일로 트러블이 생기지는 않을까...
내 발목을 붙잡는 작은 악마들
하지만 마치 운명이었던 것 처럼 이집트는 끈질기게 나에게 귓속말을 해왔고, 추석연휴동안 집에 왔던 시누이의 뜻밖의 말에 나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 정말 이집트 여행을 꼭 가고 싶어요. 이번에 가지 않으면 못갈 거 같아서 혼자서라도 무조건 갈려구요. 나 일주일 휴가 냈어요." 보통 그랬듯이 휴가때 마카오든, 어디든,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휴가를 지내고 오겠지 하고 무심하기만 했던 내 마음을 후벼파는 말이었다.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이집트라니...'
나에게는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나라였기에 시누이를 혼자 보낸 다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새언니 노릇 제대로 해본 적 없었기에 나는 결국 심호흡한번 하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같이 가요." 문자 그대로 천장을 뚫고 나갈 것 같이 좋아하는 시누이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타고 말테야...
시누이는 나의 제안대로 모든 여행 계획을 나에게 맡겼고, 나는 이것 저것 체크하고 의견을 묻느라 여러번 전화하고 문자해댔다. 정작 이집트에서 지낼 때는 못했던 사막여행과 크루즈여행을 해보고 싶었지만, 시누이의 휴가 일정상 불가능한 계획이었기에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했다.
"크루즈 여행은 다음을 위해 남겨놓도록 할게요. 아가씨 신혼여행때 한번 더 가세요. 이번에는 사막여행을 중심으로 가요." 신혼여행이라는 말에 시누이는 키득키득 웃으며 동의했지만 여자둘이서 크루즈 여행이 얼마나 웃길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 사막여행에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둘이서 지프를 빌리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 그리고 매 순간을 둘이서 서로가 서로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 그런 얘기가 오가자 시누이도 같은 걱정을 했었던 모양인지 문득 같이 갈 친구가 있는 지 수배해보겠다고 했다. 놀랍게도 시누이는 단 몇시간 만에 무려 13~14시간 가량의 비행을 해야만 갈 수 있는 먼 나라 이집트로의 여행에 반드시 동참하겠다는 두 명을 확보해냈다. 그녀는 오히려 자기 친구들이 낯설고 성격이 안맞기라도 하면 힘들지 않겠냐며 나를 걱정해주었다.
나름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별별 인간들을 다 만나보았고, 차가워 보이는 내 인상을 고치기 위해 동아리 회장이며, 도우미 활동을 통해서 대면훈련을 가졌던 나로서는 그런 문제는 사소한 것이었다. 둘이서 작은 트러블로 문제 삼지 말자는 것에 동의했기에 오히려 작은 기대감마저 들었다. 2주간의 대기 시간에도 불구하고 카이로 직행인 대한항공 할인티켓을 구할 수 없었던 우리는 과감히 대항항공을 포기하고 5시간 대기시간이 있는 터키항공을 택했다. 아마 이번 여행에 있어 두고 두고 한이 되는 일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항공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왕복 5시간 대기를 해야했던 항공스케쥴은 이집트 일정에서 무려 하루의 오차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4명의 여인네들은 여행 전 대면식을 하겠다던 다부진 계획을 귀차니즘으로 활활 태워버리고 출발 당일 저녁 8시 인천공항에서 하기로 했다. 서로 낯설어 하면 어쩌나.. 당일 만나도 괜찮을까.. 우습게도 똑같은 고민을 네 명이 다 했단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터키항공 카운터 앞에 늘어진 대기줄에서 만난 지 10분만에 다 날아가버렸다. 그들은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 베테랑인 항공 승무원이었다.
서른살 되니까 만사가 귀찮다는 둥, 변비때문에 걱정이라는 둥, 다른건 몰라도 과자는 꼭 한아름 사갈거라는 둥, 마치 10대 소녀같은 그들의 입담에 난 웃느라 정신없었고, 그런 나를 보고 Y가 말했다. "언니! 그런 썰렁한 농담에 웃어주면 안돼요! 그러면 S가 자꾸 그런 말 한단 말이에요." "후, 어쩌겠어요. 내 장점이자 단점이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도 잘 웃는 거랍니다." "아니에요 언니. 전 잘 웃어주는 사람이 좋아요. 언니를 만나 너무 행복해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저 이뻐해주셔야해요." (S의 애교 작렬에 급당황) "ㅋㅋㅋㅋ... 조심하세요. 쟤 수다 시작되면 언제 끝날지 몰라요." 이번 여행에는 좋은 동반자를 만났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주는 S, 우아하고 차분한 인상이지만 뜬금없이 적절한 개그를 발휘하는 Y와 시누이 J.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버찌님, 우리 보낸다고 고생 많았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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