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막에서 일출을 맞이하다.
사막의 밤은 춥다.
그렇다고 잠을 못잘 정도로 춥지는 않았다.
눈을 뜬 시간은 대충 4시 40분정도...
아직 깜깜한 새벽이어서 별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조심 조심 부시럭 거리며 텐트의 출입구를 살짝 열었다. 몇분간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지퍼를 올리고 다시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아직 일출까지는 두어시간이나 남은 것 같은데, 춥다고 들락날락하면 J를 깨울 것만 같았다. 두어시간 남짓 그냥 밖에 있으면 엄청 추울 것 같다는 생각에 깔끔하게 포기해주셨다. 컨디션 유지가 최우선이다. 그래도 아쉬운건 어쩔 수 없어 혼자서 중얼거렸다.
'제길... 너무 일찍 깼어. 짐이 되더라도 파카를 갖고 올걸 그랬나...'
세찬 사막 바람에 출렁거리는 텐트, 그리고 바람 소리...
보통은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를 무섭다고들 하지만, 난 이상하게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험한 환경에서도 아늑한 내 자리 하나 있다는 요상한 안도감 때문이랄까... 거기에 코러스로 이집션들이 번갈아가며 코를 골아 주신다.
조금 더 두터운 옷을 가져왔다면, 아니면 정말 좋은 침낭하나 매고 왔었더라면, 한번쯤 침낭하나로 의지하고 잠을 자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겠지 싶다.
해 뜬다음에 일어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깜박 잠들었는데 바람이 한바탕 뒤흔들고 가는 소리에 깨어났다.
텐트 안에서도 어슴푸레한 여명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맺히는 웃음. 딱 원하는 시간에 눈을 뜨게 된거지...
조심조심 일어나 카메라를 챙기는 사이 옆 텐트에서도 갈라진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새어나왔다. 확실히 Y와 S는 잠자리가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잘잤어요?"
작은 목소리로 아침인사를 건넸다.
"어? 언니도 일어나신거에요? 우리도 일어날까...."
"추우니까 좀 더 자든가요. 일출 직전에 깨워줄게요."
"웅... 그럴까요. 아우.. 진짜 춥긴 춥네..."
다들 뭉기적 거리긴 했지만, 일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를 사막에서 맞는 새벽을 마다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속삭이는 목소리에 J도 깨어나고, 다들 일어나 텐트를 열어젖혔다.
이집션들은 여전시 코를 골아대며 자고 있었다.
"추우니까 모두 한 텐트에 같이 뒹굴어요. 그럼 덜 춥지 않을까."
![091119_camp_001[1].jpg 091119_camp_001[1].jpg](http://webhard.bluemarble.travel:8000/ImageBank/egypt09B/091119_camp_001[1].jpg)
뒹군다는 말이 좀 웃겼는지 셋다 키득거렸다.
J가 흐느적 거리면서 옆텐트로 넘어갈 때 나는 워커를 신고 끈을 단단히 조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괜히 "여우조심"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텐트 주변으로 이리저리 찍혀 있는 여우 발자국들... 내가 여우 발자국을 가리키자 S도 카메라를 들고 텐트에서 나왔다.
"어머어머. 세상에 이 많은 여우들이 다 어디에 숨어 있었던거지."
도저히 한 두마리가 남겼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캠프 주변 모래밭에는 꽤 많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줄지어 찍혀 있었다.
"아우 바람이 뼛속에 스며 드는 것 같아."
추위에 약한 Y가 몸을 움츠리며 담요를 찾았다. 불편하다고 덧옷을 벗고 자더니 꽤 추웠던 모양이다. 나와 J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대로 침낭에 들어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춥진 않았었다.
그날, 11월의 사막 바람은 한국의 겨울 바람처럼 매섭지는 않았지만, 온돌과 찜질방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캠핑하기에 힘든 날씨일지도 모른다. 집안에 난방도구라고는 카펫과 이불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적 특성상, 이집트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보다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진다. 나와 J는 좀더 추웠어도 견딜만 했을거라 했다. 사실 우리가 갖고 온 덧옷들이 그리 두꺼운 것들도 아니었다.
눈을 떠 일어난 후에 해가 뜨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와 S는 카메라를 들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막의 느낌을 담느라 바빴고, Y와 J는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간간히 대화가 오고 갔지만, 해가 삐죽 머리끄트머리를 드러내는 순간 다들 조용해졌다.
경이로운 우주의 섭리를 따라 태양은 다시 이집트의 차가운 사막을 달구기 위해 솟아올랐다.
백사막의 일출
베드윈과 헬미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두들겨 깨운다음에 밥달라고 해볼까요."
농담삼아 말했는데 다들 정색을 하며 하지 말라고 그런다. 따뜻한 햇볕이 너무 좋다면서 세사람이 서로 몸을 맞대고 텐트에 쉬는 동안 산책하면서 캠프 주변의 풍경을 사진찍기로 했다.
아담한 캠프의 전경...
부지런한 성격도 아니고, 산책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여기까지 와서 텐트에 안주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래밭 위로 펼쳐진 백사막의 하얀 석회암들은 빛과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었다. 화성에 온 듯한 풍경이라는 말로는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성이라는 단어는 너무 전투적인 느낌이다. 바람이 가꾸는 별들의 정원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기에는 새하얀 석회암때문에 오히려 뜨거운 낮보다 어두운 밤이 더욱 잘어울리는 곳이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모습보다는 은근히 감춰진 모습이 더 매력적인 탓일까. 그렇다고 해서 대낮의 사막이 시시하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백사막의 낮과 밤의 표정은 너무도 다르다. 태양이 점점 떠오르면서 주변이 밝아져왔다. 태양아래의 백사막은 황금빛 바다 위에 떠 있는 영원히 녹지 않을 아름다운 설경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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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같아서는 더욱 멀리 다녀오고 싶었지만, 참아야지... 벌써 힘뺐다가는 오후 일정을 다 망칠지도 모른다.
캠프에 돌아와보니 베드윈들이 일어나 남은 장작에 막 불을 붙여 놓은 상태였다. 따뜻한 장작불쪽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을 때 텐트 안에서 물티슈로 세수를 하고 헝클어져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말아 올렸다. 그리고, 아무리 화장이 귀찮아도 땡볕에 맨 얼굴로, 벌건 대낮에 눈썹없이 돌아다닐 수야 있나... 썬크림도 발라주고 눈썹도 그려줘야 한다.
대충 끝내고 모닥불쪽 분위기를 보았다. Y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 칼릿이 아침은 뒷전이고 물부터 끓인다. 두 사람이 야유하고, 모두가 웃으며 아침시간을 즐기는 동안 개인짐을 빼놓고 두 텐트 안을 후다닥 정리해버렸다.
텐트 안에 있는 내가 뭐하는지 궁금해진 S가 다가오더니 소리쳤다.
"꺄~~ 언니가 다 정리해버렸어."
J가 화들짝 놀라며 달려왔다.
"설마. 우리텐트까지 다했어요?"
텅빈 텐트 안을 본 J는 안절부절 못했다.
"이러시면 안돼죠. 나중에 저보고 뒷정리 안했다고 못된 시누이라고 뒷담화하기 없기에요."
"야야. 원래 시누이는 무조건 못됐단 소리 듣는거야."
발빠르게 다가와서 나를 돕던 S가 핀잔을 주자 슬렁슬렁 뒤따라온 Y가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 다 그런거야. 그런데 나는 못된 며느리 소리 들을거야. 시어머니한테 밥 얻어먹고, 시누이한테 설겆이 시키고..."
Y말에 다들 정색을 하고 말꼬리를 잡는다.
"언니가 잘도 그러겠다!! 시어머니 되실 분한테 껌벅 죽으면서! "
다들 기운 넘치는거 보니 간밤에 불편하긴 했어도 잘잔 모양이다.
마침 칼릿이 물 끓는다며 우리를 불렀다. 장작불에 물끓이는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오래 걸렸다. 병아리만한 물항아리에 제법 물이 많이 들어갔지만, 커피를 타고 보니딱 3잔. 서울에서 공수해온 커피믹스를 타서 마셨다. S가 예의상 베드윈에게 권했는데, 아흐메드는 쳐다도 안보고 사절했고, 칼릿은 맛보더니 낼름 컵을 빼앗아가버렸다.
울상이 된 S덕분에 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2잔의 커피를 넷이서 나눠 마시는 동안 칼릿이 본격적으로 아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얗게 동튼 아침인데도 음식냄새를 맡고 등장한 여우때문에 또 난리... 겁없이 등장한 이 녀석 덕분에 간밤에 못찍은 여우 사진을 한 컷이라도 건질 수 있었다.
![091119_camp_014[1].jpg 091119_camp_014[1].jpg](http://webhard.bluemarble.travel:8000/ImageBank/egypt09B/091119_camp_014[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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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릿이 차려준 아침 식탁을 보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계란탕이 갑자기 생각나지."
삶아놓은 달걀 6개를 보니 누군가가 해줬던 군대얘기가 생각났다. 실제로 복무 했었던 부대에서 맹물에 소금으로 간하고 껍질을 깐 삶은 계란을 넣은 걸 계란탕이라고 내놨었다나.....
어쩌면 이들이 귀한 음식이라고 내놓은 건지도 모른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손을 대지는 못했다. 황성분이 많은 노른자 때문에 뒷감당이 힘들다. 그렇다고 까놓고 노른자만 쏙 버리기엔 너무 미안하니까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었다.
캠프식이 익숙하지 않은 세 사람은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꿀과 홍차정도만 깨작 거리면서 먹었다. 그나마 한컵도 혼자 다 못먹었던 것 같다. 내가 한젓가락 뺏어먹었는데도 다들 배부르다고 그랬으니... 이 사람들 참으로 적게, 그리고 자주 먹는다.
셋 중에서 유일하게 평소에 아침을 챙겨먹지 않는 나 혼자서 오히려 잘먹었었다. 계란과 홍차는 차마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손을 안댔지만, 칼릿이 만들어준 콩요리는 한접시 다 해치웠고, 이집트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인 에이쉬에 치즈와 꿀을 발라 먹기까지 했으니까....
"언니는 오히려 더 팔팔해진거 같아요."
Y가 신기해했다. 나는 S를 슬쩍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러게요! 나 사막 체질인가봐요. 잠도 잘잤고, 어제는 숙변제거까지 한거 같아. 속이 정말 개운해요."
그 말에 S도 맞장구를 쳤다.
"ㅋㅋㅋ 나도 그래요 언니. 전 두번이나 갔잖아요."
불안하다며 뒷간을 가지 못했던 Y와 J의 이상야릇해진 표정을 보고 우리 둘은 다시 웃었다.
담대하라.
담대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나와 S는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빠듯할 것 같았던 아침 시간은 생각보다 여유롭게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지저분한 모닥불 주변을 보고 꼭 청소하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텐트를 접어 정리하고 가방을 챙기는 사이에 이미 베드윈들이 싹 치워놓았다. 여우한테 주겠다고 버린 음식과 검게 그을려 재만 남은 모닥불 자리를 제외하고 휴지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아휴 기특한 인간들....(아니면 벌금 물까봐 무서웠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