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리야의 흑사막과 황금빛 모래언덕
지프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베드윈들이 기본적으로 가져가는 캠핑도구 만으로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뒷자리에 두 명, 중간에 세명, 그리고 앞쪽 조수석에 칼릿. 이렇게 지프에 꽉꽉 채워 달리기 시작했다. 파라프라 오아시스로 향하는 도로를 어느 정도 달리다 보니 멀리 모래언덕이 보였다. 황금빛으로 치장한 고운 모래 언덕은 완만한 곡선을 드러내며 군데 군데 주저 앉아 있었다. 헬미가 바위티까지 오는 동안 보였던 비슷한 모래언덕을 가리켜 "호빙 샌드" 라고 칭했는데, 바람에 따라 리비아와 이집트를 오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기상상태에 따라 하루만에 나타났다가 하루만에 사라지기도 한단다. 바하리야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황금색 모래 언덕이 이 곳 저곳 누일 자리를 찾아 전전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호버링도 아니고 호빙이라니... 무슨 단어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내 마음대로"떠돌이 언덕" 이라는 이름을 붙여 버렸다. 한동안 달리던 지프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멈추다시피 하더니 아스팔트를 벗어나 오른쪽 모래밭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진입점인지, 다른 지프가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도로 바깥부터 푹 파인 경사를 따라 지프는 사정없이 출렁거리며 제 몸을 모래밭으로 끌고 갔다. 잠깐 모래밭에 바퀴가 빠지는 것 같았지만, 아흐메드는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두개의 기어중 작은 기어를 사용하더니(아마도 4륜 모드?)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지프가 굉음을 내지르면서 천천히 부드러운 모래 웅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아흐메드가 다시 기어를 바꿔 사막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우아악!" 엄청난 모래 먼지가 차내에 파고들자 다들 짧게 소리 지르며 마스크로 입을 막느라 잠시 소란이 일었다. 지붕에 짐을 높게 실어놔 이런식으로 달리다가는 차가 뒤집어 지지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흐메드는 출렁거리는 모래밭을 따라 거침없이 달렸다. 모글스키장처럼 울퉁불퉁한 모래밭은 그저 바라볼때는 얕고 완만해 보이는데, 막상 그 위를 달려지나가는 기분은 .... 재밌다. +_+ 모글뿐이 아니었다. 일부러 높은 언덕을 골라 엉금엉금기어올라서는 아래로 마구 내달리기도 했다. "꺄악!!" 세 명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대니 칼릿이 뒤돌아 보고, 아흐메드는 더 험하게 달렸다. "오~~ 이건 좀 강도가 쎈데? 언니~ 달려~" 모두 키득거린다. 반응을 보여줘야 베드윈도 신나서 달린다며 지프가 앞으로 기울때마다 성심성의껏 비명을 질러주는 착한 아가씨들. 진정 즐길줄 아는 사람들이다. 지프는 한동안 모래언덕을 휘젓고 다니다가 앞으로 어정쩡하게 기울인 상태로 서버렸다. 우리끼리 웅성댈 때, 헬미가 내리라고 한다.
우리는 발자국 하나 없는 모래언덕 위에 서 있었다. 무심코 내렸다가 모자가 바람에 날려 날아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내가 너무 강한 바람에 줍는 것을 포기하고 멍하니 있는 사이 헬미와 J가 열심히 뛰어간다. 다행히도 잠시 바람이 잦은 사이 헬미가 간신히 모자를 줏었다. 그는 헉헉대면서 다가와 건네주더니 다음에 날아가면 절대로 안줏어다 줄 거라고 조심하랜다. (ㅋㅋㅋ. 정말 고마왔어요. 헬미.) 아무도 와보지 않은 것 같은 모래 언덕 위에 발을 디딘 S와 J는 탄성을 지르더니 신나게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신난 사람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칼릿도 자기 휴대폰을 꺼내며 다가 오더니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해왔다. 아하메드가 그를 위해 휴대폰을 건네 받았다. 단체사진을 찍고난 후 칼릿은 핸드폰 들여다보며 싱글벙글이다.
칼릿도 신났다. 사진 보면서 좋댄다.
흑사막의 전경과 신난 S, 그리고 바람이 그린 아름다운 무늬
"어머 쟤들 뭐니?" 나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사진 찍기에 몰두하던 Y가 깜짝놀라며 말하자 우리 모두 두 베드윈을 쳐다보았다. 마치 자기집 안방에 들어와 있다는 듯이 둘이서 머리를 엇갈려 맞대고 부처님 상처럼 옆으로 드러누은 상태로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VIP석에서 우리 노는 거 구경하는 분위기군요." "ㅋㅋㅋㅋㅋ" DSLR에 몰두하는 사이 Y가 다가와 핀잔을 준다. "언니. 혼자서 뭐해요. 같이 사진찍고 그래요." 내가 미안해하자 빙긋이 웃더니 자기 DSLR의 액정 화면을 보여준다. "사실은 언니 모습 몰래 찍었지요." "뭐야~ 이런걸 몰래 찍고 그런 말하는 게 어딨어요." 같은 기종 (엄밀이 말하면 모델명이 다르지만..)을 가진 동지라 그랬을까. 재밌게도 Y와 내가 서로를, 콤팩트 카메라를 가진 S와 J가 서로를 찍은 경우가 많았다.
죄송... 풍경을 찍는데 제가 방해가 되었군요.
S는 어느새 베드윈과 같이 앉아 열심히 사진찍기 시작했다. 과묵하고 남성적인 포스를 지닌 아흐메드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는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모래 밭위에서는 둘 다 맨발이었다. 두 사람이 목에 둘둘 말아맨 머플러도 사막을 질주할 때는 콧등으로 끌어 올려 마스크로 쓰곤 했다. 어찌보면 적절한 사막 패션이랄가... 다 멋지고 좋은데 신발에 모래가 들어간다고 투덜대던 세 사람은 그들을 보고는 차라리 신을 벗는게 더 낫겠다고 했지만, 실천한 사람은 없었다. 베드윈과 열성적으로 사진찍던 아가씨들은 타겟을 헬미에게로 돌린다. 혼자 사진 안 찍어주면 섭섭해할 지도 모른다나. 칼릿에게 부탁해 두어컷 찍었는데... ㅡ,.ㅡ^ 이자식.. 왜 사람 발목을 죄다 짤라 먹는고야? 응?
그 곳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니 흑사막에 마요네즈를 끼얹은 듯 모래 언덕이 군데 군데 있었다. 관광객이 우리 뿐만은 아닐텐데 왜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은 없을까? 바람이 금새 모래를 뒤엎어 버리는걸까? 모래언덕을 열심히 달렸던 것은 어쩌면 재미도 재미지만 이런 사구를 찾기위한 여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 혼자 착각한 거라고 말한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 아주 사소한 배려라고 해도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