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티 마을과 호텔 골든 밸리
태양이 중천에 다다랐을 때 길도 험악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모래가 뭉텅이로 가장자리를 침범해 있어서 가뜩이나 왕복 2차선밖에 되지 않아 아찔한 도로를 더욱 아찔하게 만들곤 했다. 헬미에게 노면 상태가 좋지 않으니 속도를 줄여달라고 요청해야했다. 자칫 모래때문에 미끄러질 수도 있는 상태였다. "아... 한국은 너무 좁아요."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던 J의 갑작스런 푸념에 조용했던 승용차는 토론장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사막의 모습과 내리쬐는 햇볕에 반해버린 J와 넓은 거로만 따지자면 중국이 최고라는 S와 좁아도 아기자기한 풍경을 갖고 있는 한국도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Y와 나. 여행지로는 여기가 좋다 저기가 좋다. 하다가 결국 터키는 가볼만한 할 것 같다는 내 말에 다들 동의했다.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 넷이 다시 뭉쳐 터키로 가보자는 말까지 나온다. 어이쿠... S와 Y는 도시여행보다는 유적과 자연환경을 느껴보는게 더 좋다는 내게 중국을 꼭 여행해보라고 강권하지만, 죄송...-_-;; 중국 문화엔 관심이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은 두 가지. 유람선을 타고 세계 일주와 미술관 찾아 유럽여행. 바램을 실현하려면 조금 버거워보인다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몽상에 돈드는 것도 아닌데 꿈은 야무지게 꿔야죠." 말 뜻을 이해한걸까. 다들 맞장구를 치며 저마다의 바램을 얘기한다. 승용차에서 4시간째, 지루해진 분위기를 수다로 풀고 있을 때, 쭉쭉뻗어있던 길에 점점 커브가 많아지고, 경사가 생기는가 싶더니 야트막한 골짜기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그 구간의 몇km정도 좌우 크림색으로 정비된 도로가 야산을 오르는 동안 이어져있었다.
갑작스럽게 묘한 분위기로 돌변한 도로...
우리가 올라온 길을 뒤를 돌아보니 야트막한 검은 모래산이 벙커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막 그 모래산을 넘어온 셈이다. 이제야 비로소 바하리야 사막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왔다. 이제부터 바하리야 사막이라면서 헬미가 확인시켜 주었다. 조금 더 지나자 멀리 희끄므리한 마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Welcome to Bawiti!" 헬미에 말에 뒤에서 환호를 지른다. 사막의 유랑민 베드윈들이 모여 정착한 마을 바위티. 바위티 마을에 사는 대부분의 베드윈들은 이제 유랑생활을 접고 자신들의 유랑문화를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고 한다. 바하리야 사막에서 가장 큰 마을에 속해 문물에 밝은 편이라지만, 베드윈 문화가 꿋꿋이 지켜지고 있다. 건물은 거의 모두가 1층짜리며, 여자들은 절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집의 출입구 구조조차도 남자들이 집을 드나드는 동안 밖에서 집안에 있는 여자들이 보이지 않도록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의 중앙로를 천천히 지나는 동안 성인여성을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다는 겨우 10세 안팎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들만이 남동생의 손을 이끌고 하교하는 모습만 간간히 눈에 띌 뿐이었다. 군데 군데 경작지가 보였지만 거의 텃밭 수준. 유목민 마을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헬미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여행자센터로 갔다. 철강마을에서 본 모습과 어째 비슷해 보이지만, 사람이 좀더 많고, 좀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준다. 그런데 시꺼먼 손을 내밀며 여권을 내놓으랜다. 마을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서 여권을 수거했던 헬미가 넙죽 건넨다. 우리 여권을 받은 남자는 여권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헬미는 무심하게도 그냥 출발한다. ".... 왠지... 팔려온 기분이다." J가 킬킬 거렸지만 S와 Y는 영 불안한 기색이다. 헬미가 눈치챘는지 내일 돌아갈때 돌려받는다며 걱정하지 말랜다. 삼거리가 나오고, 우리는 왼쪽 길로 돌렸다. 오른쪽은 북서쪽, 시와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마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동안 스쳐가는 사람들은 조용했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조차 무심했다. 다소 북적거리는 시장 골목을 통과할 때 조차도 자동차의 소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큰소리로 떠들만한 낙 자체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바위티가 큰 마을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가장 큰 마을일 뿐, 어느새 마을을 통과해 남서쪽 외곽지역이라고 여겨지는 위치에 골든밸리가 있었다. 다소 좁고 낡은 철제 아치를 지나자 유도화가 만발한 원형 화단 너머로 앙증맞은 건물이 보인다.
Hotel Golden Valley
헬미를 따라 로비로 들어가자마자 풍채 좋은 여주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꺼먼 남자를 예상했던 우리 네사람은 적잖이 깜짝 놀랐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하얀 피부, 금발의 벽안. 밝은 표정이 인상적인 주인은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고 위풍당당히 그 자리에 서서 내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우리 넷 모두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저렴한 영어를 구사하는 우리들로서는 불가능.... 그저 머리를 식힐겸 사막여행을 왔던 한 여인이 이 곳에 반해 눌러 앉아 호텔을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초면에 이런 저런 사생활을 묻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니 아마 유창한 영어실력이었어도 물어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저마다 그 카리스마에 감탄할 뿐... 묵을 예정이 아니니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기엔 괜시리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앞마당에서만 산책하며 장시간의 드라이빙으로 쌓인 피로를 풀었는데, 그 당시엔 '객실이 어디있을까'라는 궁금증은 전혀 들지 않았었다. 후회하지 말자가 나의 주요 가치관 중 하나이지만, 지금와서 살짝 후회된다. 좀더 시간을 청해 호텔 뒷편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어올 걸.....
호텔 로비 : 시설은 낡았지만 깔끔한 실내는 주인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로비 바로 오른쪽 옆에 식당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청국장집에 깊게 배인 꼬리한 냄새가 나는 느낌과 비슷하게 건물의 나이를 가늠해볼만한 구리한 냄새가 났지만, 2박 3일의 일정이었다면 이 호텔에서 하루 묵어가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정비된 편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마자 오른편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통과 그 옆에 홍차와 커피 등 몇 종류의 차를 구비해놓고 자유롭게 마실 수 있게 준비해두고 있었다. 벽에는 각 차종류의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체크하는 사람도 없고, 셀프서비스로 저금통에 돈을 담으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 난감하긴 했다. 점심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다들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골든 밸리라는 이름답게 황금색 커튼으로 장식된 식당 실내.
점심으로 제공된 식사. 닭다리 참 크다.....
예전엔 엄청 짠 음식들이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헌데 웬걸, 짭짤하긴 하지만 먹을만한 정도이고, 닭고기에 은근히 밴 양념도 다들 만족해했다. 속까지 잘 익어서 닭고기 만큼은 골든밸리에서 먹은 것을 최고로 쳤을 정도. 토마토 수프와 토마토와 오이를 잘게 깍뚝썰기해서 만드는 밸래디 샐러드는 지겹도록 보는 건데도 다들 싹싹 비운다. 한번에 많은 양을 못먹는 일행들 특성상 밥은 어쩔 수 없이 남겨야했다. 양껏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화장실에 들러 퇴적물도 좀 비우고 나자 다들 슬슬 정원으로 향했다. "저런 지프를 타고 가는 거에요? 우리 차였으면 좋겠다." 돌아보니 식당건물 오른쪽에 붉은 와인색 지프가 햇볕에 반짝거리며 주차되어 있었다. S의 말에 J가 거든다. "안쪽도 봤는데, 많이 낡긴 했어도 깨끗해요. 정말 우리차였으면..." S와 J는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편이다. 그런면이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특히 S는 넘치는 수다로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한동안 J와 함께 서서 지프를 바라보는 가 싶더니 자기들끼리 사진찍고 놀기 시작했다.
아야야!!
한동안 보이지 않던 헬미가 정원으로 나타났다. S와 J가 그에게 달려가더니 신난 표정으로 뛰어왔다. "와!! 언니!! 저 차 우리 차래요!! 으히히 신난다." "오~~ 정말?" Y도 은근히 그 차였기를 바랬던 모양이다. 가져갈 물건을 챙기라는 헬미의 말에 우르르 차로 몰려가 짐을 챙겨왔다. 붉은색 지프는 어느새 정원 한가운데로 나와있었고, 젊은 베드윈 남자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 옆에 서 있었다. 호텔에서 심부름을 하던 사람이 나오더니 그를 도와 우리의 짐을 지프의 천장으로 실어주었다. 짐을 다 싣고 날 즈음 또 다른 청년이 미나리 같이 생긴 야채 한 묶음을 들고 나타나 지프로 다가왔다. 헬미가 우리에게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다. 지프 위에 올라가 짐을 정리해 묶어놓던 베드윈은 아흐메드로 운전을 해준단다. 그리고 좀 더 어려보이고 개구지게 웃는 표정이 조금 느끼한 칼릿은 아흐메드의 보조겸 요리하는 것을 도와주러 동행하게 됐다.
본격적인 사막 투어가 시작되었다.
아가씨 셋의 마음을 홀랑 뺏은 녀석.
와하하! 신난다!!
이제 곧 출발할 거에요. |